2009년 6월 10일.

노무현 전대통령이 당신에게 과연 쇠고기 근수만큼의 가치는 있었는지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날.

by NSPD | 2009/06/08 11:48 | 덧글(0)

대한민국의 년도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대한민국의 년도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점: 자료; 점선: 1999년 이후의 기록을 기반으로 한 예상치; 원: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20% 저감 (EU형 목표). 미국 에너지부 EIA 자료로부터.



결국 우리가 EU 정도의 목표를 상정한다고 해도,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지점은 가공할만한 수준의 저감이다. 도표를 보자면 우리는 1988년 수준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세상에 마법 같은 기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을 믿느니 그냥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고 외치는게 차라리 더 합리적인 반응이다), 생활 수준의 희생을 통해 이 목표에 도달한다고 하면, 과연 우리는 어느 정도의 삶을 유지하게 될까.

1988년을 돌아보라. 인텔의 486 CPU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고, 386 CPU가 달린 PC는 최고급 사양에 속했다. IBM은 최초의 VGA를 1년 전인 1987년에 공개했으며, 그 사양은 320x240에서 256색, 640x480에서 16색을 표현할 수 있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성능이었다. 아직 Windows 3.1은 커녕 3.0조차 없었다. Windows 3.0의 등장을 보려면 아직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선두주자인 현대자동차는 엑셀과 구형 쏘나타(본 기억도 없는 사람도 있으리라)를 판매하고 있었고, 이미 잊혀진 엘란트라조차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드라퀘III가 발매되었고, 최초의 16비트 게임 머신 메가드라이브가 세가로부터 발표되었다.

문화적 수준은 경제적 수준에 의해서만 지탱된다. 1988년 당시 데뷔한 가수들을 들자면, 박학기, 신해철, 이상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초음전사 보그맨과 뉴건담의 시대이다. TM Network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 최소한 Beyond the time이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약간 안도가 된다. 들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니.

구르메? 가볍게 뉴요커 기분으로 커피라테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쇼핑? 불가능. 스타벅스는 1999년에야 이화여대 부근에 한국 첫 점포를 열게 된다. 한국의 소위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효라고 할 수 있는 TGI 프라이데이의 진출조차 아직 4년 남았다. 3년 전에 열린 피자헛 덕에 그나마 수도권에서 피자 정도는 먹을 수 있었을게다.

이게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지점이다.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이 정도의 희생을 할 각오가 없는 한 우리는 언제나 제자리일 뿐이다.

by NSPD | 2009/06/02 03:06 | 덧글(7)

희극의 종막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의 표시는 이 글의 공개를 영결식 하루 뒤까지 미루는 것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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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렸다.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최소한 영리한 사람이라고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자살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전근대(前近代)를 살고 있던 안이한 낭만주의자이었음을 증명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가 부조리한 국민의 요구와 타협하기 위해 비일관된 공약을 추진했다고 믿어왔다. 역시 내가 틀렸다.

내 눈에 비친 상황을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국민, 즉, 당신과 나는 전근대의 조선에 살고 있다. 자신의 불합리한 요구, 즉, 경제적 희생 없는 정치적 진보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위대한 성군(聖君), 탁월한 도덕성을 기반으로 덕치(德治)를 베풀 군자의 등극을 기다리는 순진한 백성인 척, 당신과 나는 아직도 조선에 살고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우월한 도덕적 인상을 이용하여 이러한 부조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했다. 그러나, 당연히 현실에서 그러한 부조리한 기대를 충족시킬 방법 따위는 없으며, 예정된 수순 그대로 그는 정권재창출에 실패하고, 대한민국은 여태까지의 어떠한 정권 못지 않은 반동적 정권의 지도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현정권과의 마찰 끝에 결국 그는 뇌물수수 혐의에 의해 생긴 자신의 도덕적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나는 그가 도덕성의 논리를 단지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믿어왔지만, 명백하게도 그것은 그에게 수단이 아니라 목표, 포장지가 아니라 그 자신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던 것이다. 정책들의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뇌물수수 혐의에 의한 도덕성의 붕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 그것이 이를 증명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필요에 의해 자신을 위대한 성군으로서 포장했던게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성군이 될 수 있다고 하는 환상을, 국민들만큼이나, 스스로 믿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낭만주의자, 그것도 시대착오적 낭만주의자에 불과했다.

그의 영결식은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치루어졌다. 조선의 마지막 성군이 되기를 꿈꾸던 낭만주의자를 둘러싼 희극의 종막을 내리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진심으로, 이 희극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 이상 순진한 백성이라는 허울좋은 가장을 할 수도 없고, 감상적 낭만주의 따위에 희망을 걸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당신과 나는 더 이상 전근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는 지금 여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또 다시 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by NSPD | 2009/05/30 06:04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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